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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과 인종주의

필수인포 2023. 4. 2. 23:00

우생학과 인종주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우생학eugenics 이라는 용어는 '좋은 혈통을 지녔다'는 뜻이다. 1882년 영국의 과학자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 이 처음으로 이 개념을 현대과학에 도입했다. 우생학은 유전위생법과 같은 의미로서, 한 개체군이 어떻게 유전을 통하여 개량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고대에서부터 전해오는 생각이기도 하다. 우생학은 마치 인종위생법과
동의어인 것처럼 취급되곤 하지만, 실제로 그 두 개념은 같지 않다.

 

우생학은 그 출발점을 특정 인종의 개량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의 백인들이 지구의 넓은 지역을 정복하여 식민지로 삼자, 20세기 초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저명한 학자들은 인종 이론을 받아들였다. 식민지의 토착 원주민과 검은 인종들은 정신적으로 열등한 성질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이는 원주민들이 백인보다 낮은 기술 발달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외지의 정복자들이 퍼뜨린 무수히 많은 낯선 질병으로 인해 맥없이 죽어나갔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이키운동화
나이키운동화

 

오랜 세월 동안 저항력을 길러온 정복자들과 달리 원주민들은 그런 낯선 질병들에 대한 강한 저항력을 미처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유럽인들은 또한 원주민들이 대개 문맹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 수준도 낮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들은 기독교도가 아니었다.

 

1904년에 미국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이 시작되기 2주 전, 박람회와 일련의 테스트들이 기획되었는데(사람들은 이 행사를 '인류학의 날'이라고 불렀다), 거기서 비(非)서구인들은 서양식 스포츠 종목들에 대한 테스트를 받았다. 주최측이 '미개인이자 '교양 없는 자'로 규정한 검사 대상자들은 세인트루이스에서 올림픽 대회와 같은 기간에 개최된 세계박람회에
동원된 사람들 가운데서 그 목적에 부합되게 특별 선발된 사람들로, 대개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이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줄루족, 피그미족, 부시맨 등 서로 다른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일 집단으로 규정되었다. 주최자들은 모든 '원주민'을 8개의 집단으로 나눈 후 올림픽 경기 종목들에 대한 테스트를 실시했다. 또한 원주민들에게 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과제들도 주어졌는데, 이를테면 장대 타고 올라가기 같은 것이었다.

 

인간의 초기 문화 단계의 실제 사례들을 현대 미국인들에게 보여주자는 의도와는 별도로 이 행사의 또 다른 목적은 원주민들이 서구 스포츠에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지 조사하는 것이었다. 낮은 문화 수준과 원시적인 기술을 지녔으며 자연 상태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과연 유리한 조건이 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인류학
의 위대한 권위자들은 이런 종류의 연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당시는 서구인 이외의 인종을 대하는 유럽인과 미국인의 태도에서 식민주의적 자민족 중심주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던 시절이었다. 세계박람회에서 '원주민들'을 전시한 것은 당시의 시대정신의 일부였다.

 

원주민들의 주자로서의 능력은 실망스러웠다. 가장 빠른 주자가 1마일을 5분 38초에 달릴 정도로 느렸으며, 이는 최고 수준의 올림픽 선수들에 비해 한참 뒤지는 기록이었다. 원주민들은 트랙 달리기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접근 방법을 알지 못했다. "원주민들이 단거리 달리기에 관해 일자 무식인 거라는 점은 익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출발선에 선 원주민들 중 8~
10명 정도에게는 출발 총성이 올린 후에 달려야 한다는 걸 설명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들이 결승 테이프 앞에 도달했을 때 몇 명은 그 자리에 멈춰 섰고, 다른 몇 명은 테이프에 가슴을 대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로 지나갔다."

 

전미 인류학 협회장으로, 이 테스트를 시행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인 월리엄 J. 맥기xlena Mace 박사는 이 행사의 과학적 가치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비판적 견해는 새로 확인된 결과가 원주민들이 스포츠에 열등하다는 걸 입증해주었다는 사실에 조금의 의심도 표출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인류학의 날' 이후에 제작된 공
식 보고서는 이번 검사 결과들이 강의나 학생용 교육 문헌 안에서 활용될 수 있을 만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런 인종차별적인 태도는 오랫동안 존속되었고, 한참 뒤인 1943년에 스웨덴에서 발간된 스포츠 백과사전에서도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1904년의 테스트를 언급하면서 "아프리카의 니그로 중에서 스포츠 스타를 발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결론짓는다. 예를 들어, 그들은 달리기를 할 때 자기가 가진 신체 자원을 발굴하고 배분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따라서 그들이 지적인 영역에서 그렇듯이 이 분야에서도 취약하다는 걸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위 북유럽 인종들은 유럽 문명을 돌리는 거대한 태엽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그 밖의 상이한 인종들마다 상이한 특질들이 귀속되었는데, 이런 이론의 신봉자들은 인종을 코카서스 인종, 몽골 인종 그리고 흑색 인종으로 조야하게 구분했다. 아리안 인종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신조는 특히 1930년대 나치 독일에서 비옥한 토양을 발견했다. 이 시기에 많은 나라가
받아들인 단종법sterilization law은 열등하다고 분류된 개체의 번식을 막고자 한 권력자들의 열망을 대변한다. 이러한 배경에 비춰 보면, 양차 대전 사이에 왜 달리기와 인종에 관한 논쟁이 출현하게 된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20년대에 국제적으로 상위권의 실력을 발휘했던 영국의 흑인 단거리 선수 해리 F. V. 에드워즈Harry F. V. Edwards는 속에서 우러나는 본심을 토로한 바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모든 니그로는 노래하고 춤출 수 있다고 얘기 되어왔다. 지금부터는 모든 니그로는 빨리 달리고 높이 뛸 수 있다는 상투적인 얘기를 듣게 될 것이다." '


2차 대전 이전의 국제 육상 대회에서는 전 종목을 백인들이 지배했다. 그러나 1930년대에는 흑인 단거리 주자들이 매우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특히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이후 전문가들은 달리기에서 인종이 중요한 요소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문제는 서(西)아프리카(미국, 브라질, 카리브 연안국들의 노예들이 바로 이 지역에서 끌려왔다)에서 넘어온 흑인
들이 백인들보다 단거리 전력 질주에 더 적합한지 여부에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흑인들이 백인들과 함께 단거리 달리기 시합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흑인들이 더 우월하기 때문이다. 히틀러에 따르자면, 미국의 단거리 주자이자 멀리뛰기 선수인 제임스 '제시' 클리블랜드 오언스 James Jesse' Cleveland Owens가 바로 그런 부류에 드는 인물이다. 

 

흑인이건 백인이건 가릴 것 없이 모든 스포츠 비평가들은 오언스가 1936년 올림픽에서 4개의 금메달(100미터, 200미터, 멀리뛰기, 400미터 계주)을 따냈을 때 그를 향해 이 시대 최고의 선수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오언스는 미국 최초의 일류 흑인 운동선수는 아니었지만,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첫 번째 선수인 것만은 분명했다.


여기 이전에는 흑인들의 소질이 부족하다고들 얘기하더니, 이제는 그들의 성공을 타고난 신체 조건과 재능 덕으로 돌렸다. 미국인 엑스레이 전문가 E. 앨버트 킨리E. Albert Kinley는 일찍이 흑인이 백인보다 뒤꿈치가 더 길기 때문에 많은 종목에서 기록을 세울 거라고 예언한 바 있다.

 

미국의 흑인 우생학자들도 이 논쟁에 참여했다. 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윌리엄 몬터규콥william Montague Cobb이라는 전직 하워드 대학 교수였는데, 그는 2차 대전 이전에 인류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던 유일한 흑인이었다. 

 

1936년에 그는 보존 처리된 흑인과 백인의 골격을 비교하기 위해 케이스 웨스턴 대학의 과학자들을 초청했다. 그가 개최한 세미나의 목적은 긴 뒤꿈치 뼈, 편평족, 더 긴 다리 근육 힘줄 그리고 더 긴 다리가 흑인들이 거둔 성공의 비결이라 할 수 있을지 밝히는 것이었다.

 

당시 연구자들은 제시 오언스와 프랭크 와이코프Frank Wykoff도 검사 대상으로 삼았다. 와이코프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빨랐던 백인으로서 1936년 올림픽 100미터에서 4위를 차지한 선수였다. 콥은 오언스가 전형적인 코카서스 인종의 다리 근육 조직을 갖고 있는 반면, 와이코프는 전통적으로 니그로의 것이라 여겨진 근육 조직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콥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니그로 챔피언들은 그들을 니그로라 직접적으로 동일시할 수 있는 단일한 특징(피부색을 포함하여)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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