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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과 생활을 용이하게 하는 도구 석기

당시 석기는 생존을 보장하고 생활을 더 용이하게 만드는 도구였다. 후기구석기시대에는 기본적으로 사용되었던 석기가 증가했는데, 이는 도구 생산에서 효율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특정한 도구를 생산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재료를 사용했고, 이를 위해 일부러 먼 곳 까지 나가기도 했다. 돌은 여전히 일순위 원자재였지만 후기구석기에 들어서는 바늘, 송곳, 낚싯바늘, 작살과 같은 특수한 연장을 만들기 위해 뼈와 뿔을 더 많이 사용했다. 식물의 섬유질로는 그물, 낚싯줄, 올가미를 만들었고 이러한 도구는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어류, 조류, 작은 동물을 사냥하는 데 사용했다.

 

여러 부분이 결합된 무기와 도구는 접착제를 사용해 조립 부분을 고정시킴으로써 더 나은 지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했다.
또 이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점토를 구워 만든 소형 조각상이 있다. 이런 조각상을 보면 당시 인류가 난방, 요리, 식량의 보존을 위해서 불을 사용할 줄 알았을 뿐 아니라 점토나 롬loam Lehm(독일어), 실트 및 점토 함유 비율이 25-40퍼센트 정도 되는 토양을 말함, 역청과 같은 물질에 고온의 열이 미치는 작용에 대해서도 지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이런 지식을 갖추는 데는 이미 그러한 경험이 뒤받침되었을 것이며, 또 이를 갖고 실험을 해봤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생인류와 그가 이룬 모든 발전의 핵심적 특징이다. 이런 발전을 성취하고 생존의 보장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필요를 충족시킨 사람이라면 가끔일지라도 약간의 시간과 여유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 시간을 문화의 다른 측면에 쓸 여유가 생긴다. 이런 차원에서 자신을 치장하려는 호모 사피엔스의 욕구는 현대적인 것이라 간주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구슬로 만든 사슬, 옷에 부착하는 장식, 다양한 재료(조개, 달팽이, 타조알 조각 등)로 된 펜던트를 착용했다. 이에 더해 신체를 채색하기 위해서 황토와 같은 안료를 사용했을 수도 있지만, 이것은 확실히 증명되지는 않았다.

 

여하튼 이 현상들은 인간이 자신의 미적인 감각과 잠재력을 발현하고 싶은 충동에 눈을 떴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욕구는 완
벽하게 대칭적이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저 세심하게 다듬은 규석 석기가 제작된 데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욕구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대하는 방식에서, 즉 자기 자신의 모습을 다르게 만들어 나갔다는 사실에서 더 직접적으로 발현된다. 이렇게 자신을 다른 방식으로 대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야 했을 터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해 사고할 능력을 가진 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이 아니다. 중기구석기시대 네안데르탈인은 이미 죽음, 나아가 죽은 후의 시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자의 무덤에 부장품을 넣은 것은 후기구석기시대 현생인류에 와서다. 부장품을 넣으며 그는 죽은 후의 삶을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저 죽은 자의 개인적 소유물을 함부로 대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일까? 무엇이 정답이든 간에 이런 현상은 인간 사고와 감각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준다.


인간은 문화적 현대성을 의미하는 또 다른 중요한 기준, 즉 예술을 향해 첫발을 내딛은 지 얼마 안 돼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온갖 분야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험해봤다. 소형 인간 조각상과 소형 동물 조각상도 만들고 암벽이나 돌 혹은 돌판에 그림을 그리거나 새겨넣었다. 피사체의 포즈와 자세를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면서 동작을 취하고 있는 것도 그려보았다. 때로는 사실적이면서 역동적이게 어떤 때는 추상적인 기하학적 모양으로 의식적으로 창조된 이 모든 예술 형태는 문화적 진화의 획기적 분기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예술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무엇인가의 표현이자 동시에 의사소통이었고 이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초기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가 그러하듯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시키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림과 상징을 만들어냈다. 예술은 그 당시에도 오늘날처럼 매우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나 실제 삶에 가까운, 역동적이고 표현력 넘치는 저 뛰
어난 암석 벽화에는 근본적으로 변화된 사회 모습이 반영돼 있다. 빙하시대 예술의 이 뛰어난 증거물들은 예술을 향한 매우 중요한 진일보로서, 인류는 예술과 더불어 현대성을 성취했다. 이후부터는 메시지, 내용, 표현수단, 양식이 다양해졌을 뿐이다.

 

왜 빙하기 예술에서 그림에서든 조각상에서든 '최고의 창작물'이 유럽의 특정한 지역들에서만 나타나고 있는지, 왜 다른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기껏해야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렀는지, 이 문제들은 오늘날까지 설득력 있게 해명되지 못하고 있다. 후기구석기시대에 여러 재료로 제작된 소형 동물 조각상, 특히 소형 인간 조각상은 대서양에서 시베리아에까지 이르는 지역에서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