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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산맥과 에니세이강 사이 지역에서의 금속 가공과 사회적 분화

동기시대에는 금속 이용이 산발적으로만 나타났고 사회 경제적 관계에 있어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던 데 반해 청동기시대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일대 약진을 하게 된다. 금속 물건은 수적으로 증가했고 형태도 다양해졌다. 금속의 채굴, 가공, 유통은 각기 독자적이면서 많은 부분에서 자율적인 활동영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속을 가공하는 기술은 이후 계속 전문화되어갔다. 꾸준한 광석 수요 증가는, 그것이 자급자족을 위한 것이었든 잉여 생산물을 위한 것이었든 간에 채굴장을 더 많이 개척하고 이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새로운 광맥을 찾기 위한 지속적인 탐광 작업도 이루어졌다. 이 시기엔 처음으로 여러 지역을 포괄하며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고정된 주거지들이 형성되었다. 사회 구조 또한 남성 전사가 주축을 이루는 지도층이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등 변화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도층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거대한 무덤 건축물과 화려한 부장품들로 입증된다.

 

오비강에 이르는 우랄산맥 동부 지역과 남쪽으로 카자흐스탄에 이르는 지역에서 여러 특징을 공유하는 지역 문화들이 형성되었다. 이 문화는 금속 생산의 뚜렷한 증가, 주거지의 위계화, 지도 계층의 형성을 그 특징으로 하며, 지도 계층의 형성은 장제에서 확인된다.

 

이런 모든 특징은 신타시타 문화 지역에서 매우 분명히 드러난다. 신타시타라는 이름이 유래한 유적지인 신타시타 발굴지나 아르카임 주거지는 사다리꼴 가옥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옥은 긴 벽면 쪽이 서로 맞붙어 연결되어 있는데, 이렇게 길게 이어지며 한 줄 또는 두 줄로 열을 지어 전체적으로 원형을 형성했다. 

 

여기에 더해 해자 또는 큰 문이 있는 장벽 등 방어 시설로 주변을 둘러쌌다. 이러한 주거지는 계획적으로 건축이 이루
어진 특별한 예다. 과거 수백 수천 년 동안 조직적이지 않았던 주거지 구조와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신타시타에서, 그리고 아르카임에서도 거의 모든 집에서 구리가 가공되고 칭동이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자급자족용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요컨대 야금술은 이 유적지들의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우랄산맥 남쪽에는 중요한 구리 광석 채굴장이 있었다. 카르갈리 유적지에서 볼 수 있듯이 구리 채굴장에서는 최소한 이 시기에, 혹은 심지어 기원전 3000년대 후반부터 이미 채굴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랄산맥 끝자락 동남쪽 인근에 위치한 신타시타와 아르카임 같은 주거지는 확실히 이 지역에 국한해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사례다. 동쪽 토볼강 하류와 이심강 어귀의 타시코보-론기노보 문화 주거지들은 신타시타와 아르카임보다 덜 계획적인 주거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들도 원형 주거지 모델을 따르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기둥 건축물들이 더 방만한 형태의 원을 이루고 있다는 정도다. 이 주거지에 살았던 주민들은 금속 가공 외에 특히 가축 사육에도 몰두했다. 

 

이는 동물 뼈 유적의 절반 이상이 양과 염소의 것이라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많이 나온 것은 소뼈로 40퍼센트에 달하는 반면, 말 뼈는 8퍼센트만 차지한다.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식물 경작이 이루어졌다고 추측은 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밖에 신타시타와 아르카임에서는 남성 전사 지배층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 무덤 구조물은 당시 수준으로서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고, 지하 깊숙한 곳에 묘실이 위치해 있었다. 묘실에는 청동 단검, 찌르기용 창의 청동 창촉, 규석으로 만든 화살촉, 돌로 만든 곤봉 등 많은 무기류 외에 처음으로 바퀴살이 달린 전차도 매장되어 있었다. 얇은 판 모양의 재갈이 마구로 쓰였는데, 이 형태의 재갈은 오랜 기간에 걸쳐 사용되었으며 중앙아시아에서부터 동유럽까지 퍼져 있었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이 재갈의 변이 형태로는 미케네의 갱도 무덤에서 발견된 것이 있다. 신타시타나 아르카임 무덤 유적과 비슷한 형태로 호화로운 용사의 무덤을 품고 있는 봉분은 우랄산맥 서쪽 아바셰보 문화권과 동쪽의 이심 평원에 위치한 페트로브카 문화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이곳에서도 이륜 전차가 출토되었다. 

 

하지만 아바세보 문화나 페트로브카 문화에서는 현재까지 신타시타와 아르카임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계획적으로 세워진 원형 주거지가 발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방어 시설을 갖춘, 범지역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규모 주거 단지가 있었음은 확실하다. 가령 노보니콜스코 주거지에서는 대규모 정방형 해자가 발견되었는데, 이해자는 봉긋 솟은 지대에 위치해 있었고 그 안에 사각형 집들이 좁은 간격을 두고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이는 기원전 2000년대에서 기원전 1000년대로의 전환기에 우랄산맥 인근 동남부 지역에서부터 북카자흐스탄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계층 형성의 분명한 징표를 보여주는 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현상은 의심할 바 없이 금속 가공이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된 것과 연관이 있다.


더 동쪽, 특히 알타이산맥과 투바공화국 지역 또는 미누신스크 평원에서는 완전히 다른 문화 형태가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장제나 그 밖의 다른 유물을 통해 볼 때 위에서 서술한 바와 비견될 만한 지배층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다. 알타이산맥에 분포되어 있던 카라콜 문화는 돌판을 짜맞추어 만든 석곽 무덤으로 유명한데, 이 석곽은 여러 색을 사용해 그린 인간 형상과 가면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곳에서 본격적인 엘리트 지도층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미누신스크 평원의 오쿠네프 문화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문화도 기원전 2000년대 말과 기원전 1000년대 초에 존속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 지역에 존재했던 이전 문화들과 유사하게 무덤 크기나 부장품에서 사회적 계급 구분은 나타나지 않는다.


오쿠네프 문화인은 예술 창작물에서 매우 괄목할 만한 유적을 남겼다. 족히 수 미터에 달하는 여러 문양으로 장식된 석비가 그것으로, 이는 본래 묘역에 세워지는 것이었다. 이 석비의 중심에는 인간의 얼굴 또는 가면이 매우 다양한 형태로 장식되어 있는데, 보통 석비 하나에 여러 개의 형태가 그려져 있다. 이 상들은 흔히 귀가 길거나 뿔이 있고, 빛을 발하는 모양을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동물과 조합되는 경우도 있는데 특히 주둥이를 벌리고 있는 곰이나 뱀 또는 그와 비슷한 형상들을 볼 수 있다.

원이나 별 모양의 기호들도 나오는데 이는 태양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다른 문양에는 첫눈에 알아보기 힘든 복잡하게 엉킨 선들이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