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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농경에서 고등 문명으로의 발달 과정, 인도 아대륙

구석기시대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즉 기원전 1만 년경 플라이스 토세가 종식되던 시점에 인도 아대륙 일부에서는 생산 경제를 향한 첫걸음이 내딛어졌다. 이는 서남아시아의 영향이 동쪽으로 파급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이 영향은 일단 인더스 계곡과 이 지역에 접해 있는 지역에만 미쳤다. 

 

즉 오늘날 파키스탄과 그 인근 인도 서북부 일부에 국한되었다. 인도 아대륙 나머지 지역은 인도 서북부와 지형상으로나 기후상으로 다른 특징을 지녔고, 농경과 가축 사육 발달에서 훨씬 뒤처졌으며 발달 과정도 다르게 진행되었다.


이런 사정은 이 광활한 땅이 어떤 지형들로 구분되어 있는지를 보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북부와 동북부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히말라야산맥과 그 서쪽으로 이어지는 카라코람산맥이 자연적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히말라야 남쪽으로는 갠지스강과 브라마푸트라강이 흐르는 넓고 비옥한 평야가 이어진다. 갠지스 평야 서쪽으로는 매우 건조한 유사 사막지대가 인도 서북부에 걸쳐 펼쳐지다가 인더스 저지대로 이어진다.

 

라자스탄과 구자라트 대부분을 차지하는 타르 사막은 동부와 동남부 쪽으로 뻗어나가 아라발리산맥까지 가닿는다. 데칸고원은 인도양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삼각형 모양 아대륙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고원은 빈디아산맥과 사트푸라산맥에 의해 갠지스 평야와 분리된다. 데칸고원에는 많은 하천이 분포되어 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벵골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인도 서해안과 동해안에는 고츠산맥이 뻗어 있어 데칸고원을 둥글게 감싸고 있다. 행정되어 인도 북부와 중부 산악지역들은 특히 대륙성 아열대 기후의 특징을 보인다. 이에 반해 남부와 해안지역은 해양성 특징을 강하게 띠는 열대성 기후를 보인다. 때문에 인도 아대륙에서는 히말라야 고산 식생대에서 반도 남단 열대성 우림지역에 이르기까지 식물상이 매우 다양하다. 강가의 평야, 특히 갠지스강과 브라마푸트라강의 평야는 오늘날 파키스탄에 대부분 위치해 있는 인더스 계곡과 더불어 인도 아대륙에서 가장 비옥한 지대를 형성한다. 

 

갠지스 평야는 데칸고원과 이 고원 가장자리에 위치한 산맥들과 함께 예전에는 대부분이 몬순림에 덮여 있었다. 인도 동해안, 그리고 특히 갠지스 삼각주와 브라마푸트라 삼각주에서는 맹그로브열대와 아열대의 갯벌이나 하구에서 자라는 목본식물의 집단 즉, 소금물에서 서식할 수 있는 홍수림이 조성되어 있다. 습도가 높은 서해안의 서고츠산맥 지대에서는 사시사철 푸른 우림 지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가장 초기 문명 부터 정착생활과 생산 경제에 이르기까지 문화 발전이 이루어졌던 지역은 주로 아대륙의 대하 유역, 즉 서북부 인더스강 유역, 북부와 동북부의 갠지스강 및 브라마푸트라강 유역이었다. 이에 반해 반도에 위치한 그 밖의 지역은(데칸고원과 남부 지역) 더 늦은 시기에야 비슷한 변화를 보였다.

 

이따금 인도 아대륙에 후기구석기시대 말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는 이행기인 중석기시대가 존재했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중석기시대의 전형적인 특징은 세석기로 대표되는 석기 제작이다. 하지만 비슷한 형태의 도구가 이미 구석기시대 말에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에 두 시기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긋는 일이 항상 쉽지만은 않다. 인도 아대륙의 중석기적 유물 목록을 보면 특히 가축 사육과 식물 재배를 추측하게 만드는 최초의 단서가 보인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측정한 결과 이 자료 중 몇몇은 후기 플라이스토세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중석기시대가 끝나는 시점은 최소한 기원전 9500년경으로 계산된다. 가장 중요한 중석기 유적지 중 하나는 라자스탄 지역의 바고르 유적지다. 이곳은 아라발리산맥의 가장자리, 하곡보다 높은 모래 언덕에 위치해 있다. 이 주거지는 세 시기로 구분된다. 가장 오래된 시기는 세석기 시기로 기원전 5000년대 중반부터 기원전 4000년대 중반까지로 추정 된다. 

 

다음에 이어지는 시기는 기원전 4000년대 말과 기원전 3000년대에 속한다. 야영 장소로 이용되었던 이 유적지에서는 동물 뼈가 두드러지게 많이 쌓여 있는 장소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아마도 동물을 가공했던 곳으로 추측된다. 여기서는 양과 염소의 잔해가 발견되었는데 이미 가축화된 종이었다. 그 밖에 가축화된 소와 야생종 소의 흔적 또한 발견되었다. 

 

그 밖의 동물 잔해에는 물소, 사슴, 멧돼지, 쥐, 거북이 같은 야생 동물이 고루 포함되어 있었고 물고기 잔해도 볼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주거 시기에서 이미 손으로 만든 간단한 형태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하지만 발견된 토기는 소량이었다. 다음에 이어지는 두 번째 주거 시기에서는 더 잘 구워진 토기가 제작되었고 수량도 더 많았다. 그 밖의 유물로는 가락바퀴와 돌, 구리로 만든 최초의 물건이 발견되었다.

 

비슷한 유물을 전해주는 곳은 아담가르 유적지다. 이곳은 데칸고원 서북쪽 변방에 위치해 있다. 이 유적의 가장 아래 지층은 기원전 6000년대 에서 기원전 5000년대의 것이며, 많은 세석기 도구와 가축화된 동물(개, 양, 염소, 소)의 잔해 그리고 다양한 야생동물(사슴과 토끼 등)의 잔해가 발견되었다. 

 

구자라트 서북 지방에 위치한 로테스와르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세석기와 가축화된 동물(양, 염소, 소)과 야생동물 잔해 외에도 갈돌이 발견되었다. 갈돌의 출토는 식물(추측건대 대부분이 채집된 야생종이었을 것임)을 가공해서 이용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방수 로테스와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라트나푸라에서는 동물 잔해 중 가축화된 양과 염소 잔해가 60퍼센트 이상이나 차지했다. 이런 점을 보면 인도 서북부의 중석기시대 지층을 포함하고 있는 유적지(주로 구자라트, 라자스탄, 데칸고원 서북부 변방 지대에 분포되어 있는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최소한 기원전 5000년대에 이미 가축을 사육하고 동물을 가축화 했었다는 것이 확실시된다. 이와 관련해 바르 지층의 순서를 살펴 보면 금속 가공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그 이후 기원전 4000년대와 기원전 3000년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주거지와 건물의 잔해는 대부분의 유적지에서 미미하게만 발견된다. 기둥을 박았던 구멍이나 조리용 모닥불 자리 또는 화덕 잔해, 작업용 플랫폼이 몇몇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 주거지역의 구조나 장기적 지속성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추측만 가능하다. 

 

가축 사육이 분명하게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일 년 내내 주거했던 것인지, 다시 말해 이미 정착생활이 일반화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이 장소들은 특정 계절에만 이용되었던 것인지는 아직 의문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