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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전령

필수인포 2023. 4. 1. 00:40

영국의 전령

유난히 따스했던 어느 날, 지원자들은 공작이 발코니에 한가롭게 누워있는 동안 공작이 시킨 대로 제복을 입고 앞뒤로 왔다갔다 뛰고 있었다.


그는 특히 그 가운데 한 젊은이를 마음에 들어했고, 그런 멋진 친구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그 젊은이를 오랫동안 계속 뛰게 했다. 마침내 공작이 소리쳤다. "그만하면 충분하네." 그 젊은이는 자기가 빌려 입은 말쑥한 제복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요”라고 대꾸하곤 누가 붙잡을 새도 없이 잽싸게 도망쳐버렸다. 

 

전령2
전령2


영국에서는 전령들을 '달리는 종복running footmen' 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17세기 이후로 귀족들에게 고용되어 전갈을 전하기도 하고, 돈이 걸린 달리기 시합에 나가기도 했다. 전령을 부린다는 것은 경주마를 소유하는 것과 비슷했다. 달리는 종복들은 젊고 씩씩해야 했으며, 잘빠진 다리에 미혼이어야 했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 주인의 시중을 드는 하인이 되었고, 정
력이 달리는 임무는 젊은 동료들에게 넘겨주었다.

 

달리는 종들은 명령에 즉각 복종해야 했고 하루 중 어떤 시간이든, 연중 어떤 계절이든 상관없이 중요한 심부름을 처리하기 위해 달려야 했다.

 

스코틀랜드의 홈 백작 Earl of Home은 어느 날 밤 자신의 종복에게 30마일은 족히 떨어져 있는 에든버러에 중요한 전갈을 전하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식사를 하려고 내려오던 백작은 그 전령이 긴 의자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심부름을 까먹고 밤새 잠을 자고 있었던 걸까? 화가 나서 매질을 하려던 찰나 백작은 그 날랜 전령이 밤사이 벌써 에든버러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귀족들이 제아무리 쩨쩨한 변덕을 부려도, 이를테면 어떤 물건을 가져오거나 가져다주라 하건, 의원에게 약을 받아오라 하건, 사모하는 여인에게 자그마한 깜짝 선물을 보내고 싶어 하건 상관없이, 달리는 종복들은 늘 서둘러야 했다. 로더데일 공작 Duke of Laudertale에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하인들이 만찬을 위해 식탁을 차리고 있을 때였다. 은제 식기가 부족해 상차림을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없게 되자, 공작은 그 저택에서 제일 잘나가는 중복에게 약 15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자신의 또다른 저택에 가서 은제 식기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그 청년은 잽싸게 내달려서 손님들이 만찬장에 들어오기 전에 물건들을 챙겨 돌아왔다. 마치 품속에 있던 물
건을 바로 내놓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1751년에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있었던 한 일화가 보여주듯, 전령들은 자신들의 직업적인 위상에 자부심이 대단히 강했다. 어느 날 그곳 귀족들 밑에서 일하던 전령들은 그 지역 치안요원들이 탄띠를 두르고 색색의 리본으로 장식한 신발을 신고 다닌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들은 그런 옷차림을 할 권리는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있다고 주장하면서, 치안대에게 그 제복을 입지 말 것을 요구했다. 치안대가 그 요구를 묵살하자 전령들은 치안 요원 한 명을 습격해 길거리에서 강제로 신발을 벗겨버렸다. 치안요원들이 계속 그런 옷차림을 고집하다가는 살해 위협까지 당할 지경이었다.

 

양측이 서로를 공격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이르렀을 때, 시의 최고 권력자가 중재에 나서서 치안요원들에게 앞으로는 푸른색 탄띠만 두르고 구두 끈은 구두와 같은 색의 끈만 쓰도록 명령했다. 양측 모두 이 결정에 만족하여 주먹다짐까지는 이르지 않고 갈라서게 되었다.

 

전령들은 전갈의 빠른 전달을 명예가 달린 문제로 간주했고, 그래서 자신들의 몸을 무자비하게 혹사시켰다. 이 직종에 들어온 젊은이는 흔히 3년에서 4년 정도 일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상당수는 안타깝게도 요절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한두 명은 20년, 심지어 40년 동안 일을 하기도 했다. 요아힘 하인리히 에르케 Joachim Heinrich Ehrke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1790년부터 무려 43년간 독일 메클렌부르크Mecklenburg 대공의 궁정에서 전령으로 일했다. 나이가 들자 그는 젊은 후계자들을 훈련시켰는데, 자신의 세 아들을 포함해 총 11명을 맡아 교육시켰다.


에르케는 전령 조련사로서 자신의 임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제자들에게 식단 관리의 규칙들을 역설했고, 호흡 훈련을 설명해주었으며, 지리학을 가르쳤다. 그는 코로 숨쉬기를 권했고, 복부 통증을 완화하려면 양쪽 옆구리를 누르라고 알려주었다. 통증 완화를 위해서 학생들은 허브차를 마시기도 했다. 진실일 수도 있고, 어쩌면 꾸며낸 것일지도 모르는 유명한 이야기가 한 가지 있는데,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쑤시는 듯한 복부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비장) 제거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비장이 바로 통증을 느끼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소망의 발로에서 나온 얘기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들은 무거운 신발을 신고 모래사장이나 새로 판 경작지에서 달리기 훈련을 받았고, 그때마다 무릎을 최대한 높이 들어 올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수련기간 동안 그들은 진정으로 극한의 훈련을 경험했다.


에르케는 귀족들을 위해 일할 전령들을 훈련시키는 일이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는 직업으로 정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1782년에 브레슬라우에서 출간된 《주자(者)들을 위한 의약 편람 Medicinal Handbook for Runners》에는 더 빨리 달리는 방법, 체력을 증진하는 방법 그리고 복부 통증을 피하는 방법 등이 실려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의학적 처방들이 오늘날
얘기하는 이른바 금지 약물 복용 같은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약물에 대한 신뢰는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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