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생활정보

전령과 곡예주자들

필수인포 2023. 3. 31. 10:35

전령과 곡예주자들

15세기 이래로 중부 유럽에서는 '달리는 전령' 들이 활약했다. 그들은 전업 전령으로 일하거나, 귀족 혹은 영주들을 위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해 주던 사람들이다. 농노와 그 주인의 관계에 관해서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속담이 전해진다. "일주일에 엿새 동안 주인을 섬기고, 일곱 번째 날에는 전갈을 전하러 다녀야 할 것이다.


1573년 폴란드 브레슬라우에서는 선임 전령 한 명의 관할하에 40명의 수하 전령들이 속해 있었다. 그들은 보수가 좋고 고정적으로 교대근무를 할 수 있는데다, 군복무를 면제받는 등의 특권을 누렸다. 중앙유럽은 영토가 작은 나라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는 전령들이 감당해야 할 거리가 대체로 짧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우선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나라
들끼리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령들은 하루에 60마일은 너끈히 오가야 했다. 그들은 임무 수행거리에 따라 보수를 받았고, 비번일 때는 돈을 받지 못했다. 

 

전령
전령

 

17세기 초엽 독일에서 전갈을 들고 달리는 사람들은 확실한 전문 직업인이었고, 그 점은 '로이퍼 Laufer' (주자(者)를 뜻함), '뢰퍼Loper'와 '보트Bot' (둘다 전령을 뜻함) 등과 같이 사람들의 성(姓)에도 반영되었다. 이 직업은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전수되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다.


어떤 코스를 택해야 하고, 통보를 받게 될 사람이 누구며, 누가 전령을 부를 수 있는지에 관한 규정은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여행길이 구불구불 험난할 수도 있고, 소식을 전달해야 할 사람들이 많을 경우도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낯선 장소에 도착한 전령들이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기 위해 과장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거짓말쟁이
전령'이라는 관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많은 곳을 여행하고 또한 자기가 갔던 곳에서 새로운 소식을 듣고 온 사람이 호기심 많은 시민들에게 둘러싸이게 되면, 거짓말을 하고 싶은 유혹을 받기 마련이다. 전령이 도착하면 무언가 이색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도시의 출입구에서 등록 절차를 밟은 뒤 지정된 목표 지점까지 마지막 전력 질주를 하고 난 후, 대다수 사람들이 문맹인 사회에서 전할 소식을 큰 소리로 낭독하거나 혹은 전달할 문건을 넘겨주는 공식적인 의식을 치렀던 것이다. 

 

사실 모든 전령이 소식을 낭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장거리 임무를 띤 전령들은 머리를 밀고 두피에 전달 사항을 적어 가곤 했다고 한다. 머리카락은 다시 자랐을 테니 수령인이 그 전달사항을 읽으려면 전령의 머리를 다시 밀어야 했을 것이다. 규정에 따라 전령은 반드시 보수를 받고 소식을 넘겨주어야 했으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이 직종에서 쫓겨나는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의무 불이행자는 호된 벌을 받았다.


일정한 주거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전령들은 여행 경험이 많고 식견이 높았다. 그들의 직업은 국경선을 넘나드는 것이었고, 비록 자신들은 비천한 출신이었지만 업무상 상류층 사람들과도 수시로 접촉했다. 따라서 상당한 존중을 받았고, 오랜 경력은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디딤판이 되었다.


전령을 방해하거나 다치게 하는 행위는 금지되었고, 아무리 전시(戰時) 라 해도 외교적인 면책특권을 갖고 있어서 협상에 관한 정보들을 가지고 전쟁터를 가로지를 수 있었다. 전갈은 비나 바람에 잘 견디도록 통에 담아서 자루나 행낭 안에 넣고 다녔다. 어떤 전령들은 행낭 끝에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작은 술자루를 달아놓고 길을 가면서 꿀꺽꿀꺽 마시기도 했으
며, 삶은 달걀과 그 밖의 다른 먹을 것을 지고 다니면서 요기를 했다. 그들은 자기 도시를 상징하는 색상의 특별한 제복을 입고 다녔으며, 들개나 강도 그리고 다른 악한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곤봉이나 창 혹은 단검을 차고 다녔다. 그들의 신분은 소속 도시의 문장(紋章)이 들어간 휘장이나 통행증으로 확인되었다.


1700년경에 이르러 독일에서는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전갈을 들고 뛰는 전령의 시대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도로 사정이 개선되고 말을 이용한 소통 수단이 발전하면서 그들은 점점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갔던 것이다.

 

다. 비록 1712년 당시 베를린에서 오가는 모든 우편물을 배달하는 데 불과 4명의 집배원만이 필요한 수준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독일의 우편 체계가 발전한 것도 원인이었다. 점차 우편배달부들이 전령들의 임무를 대신하게 되었고 신문, 잡지, 사적인 편지 등을 배달하면서 우편물의 양도 함께 증가하게 되었다.


실직한 독일의 전령들은 새로운 고용주를 찾았다. 왕이나 귀족들이 중요한 연회나 회의 장소에 자신들이 도착했음을 알리기 위해 소위 전구 forerunner들을 고용했던 것이다. 마차가 시속 5~6마일 이상의 속도를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민첩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마차를 앞질러 갈 수 있었다.


전구들의 역할은 원래는 다른 것이었다. 14세기에는 도로 사정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전구들을 마차 앞에서 달리게 하면서 마차가 지나가기 가장 좋은 길을 고르도록 했다. 나중에 그들의 주요 임무는 쾌적한 여행을 책임지면서 또한 어두울 때는 횃불을 들고 마차 앞에서 길을 밝히는 일로 변했다. 그들은 나란히 줄지어 달리는 것을 선호했는데, 이는 대로변에서
특이한 광경을 연출했다. 이를테면 여행길에 나선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술탄같이 지체 높은 사람의 행차는 먼 거리에서도 눈에 보이고 귀로 들을 수 있었는데,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 삐걱거리는 바퀴 소리 그리고 전구들이 노래하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려왔기 때문이다.


16세기에 술탄은 100명으로 구성된 페르시아 출신의 달리기 재주꾼 무리를 거느렸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페를레스peirles(마부 혹은 종복을 뜻함)라고 불렀다. 그들은 술탄이 지방으로 순시를 나갈 때 마차 옆에서 뒤로 돌아 달리면서, 재주넘기 등의 묘기를 선보임으로써 술탄을 즐겁게 해주었다. 

'생활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성 주자들  (0) 2023.04.01
영국의 전령  (0) 2023.04.01
청소년기 도덕성 발달의 관련요인  (0) 2023.03.30
청소년기의 도덕성  (0) 2023.03.29
청소년기 친구관계  (0) 2023.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