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생학과 인종주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우생학eugenics 이라는 용어는 '좋은 혈통을 지녔다'는 뜻이다. 1882년 영국의 과학자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 이 처음으로 이 개념을 현대과학에 도입했다. 우생학은 유전위생법과 같은 의미로서, 한 개체군이 어떻게 유전을 통하여 개량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고대에서부터 전해오는 생각이기도 하다. 우생학은 마치 인종위생법과 동의어인 것처럼 취급되곤 하지만, 실제로 그 두 개념은 같지 않다. 우생학은 그 출발점을 특정 인종의 개량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의 백인들이 지구의 넓은 지역을 정복하여 식민지로 삼자, 20세기 초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저명한 학자들은 인종 이론을 받아들였다. 식민지의 토착 원주민과 검은 인종들은 정신적으로 열등한 성질을..

달리기 시합 규칙 규칙은 간단했다. 모든 참가자가 같은 시간에 출발해서, 그날 구간의 결승선에 도달했을 때까지의 기록을 재고, 그런 식으로 모든 구간의 기록을 합산하여 최종 성적을 내는 것이었다. 자정까지 구간을 완주하지 못한 참가지는 실격이었다. 뉴욕에 도착했을 때 합산 기록이 가장 좋은 선수가 우승자가 되는 것이다. 닷새째에 참가자들은 모하비 사막의 광천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물 펌프가 단 하나만 설치되어 있었다. 다음 날부터는 길가에 샘터들이 있는 곳마다 중간 점검 지점들이 설치되었지만, 파일은 그런 물 펌프들 사이의 구간을 달릴 때에는 물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았다. 많은 주자들이 갈증과 화상으로 고통을 겪었다. 어떤 곳에서는 도로 표면에 기름이 쏟아져 나와서 딱딱한 모래덩어리들이 생겼는데,..

미국 횡단 경주 1928년 봄, 사업가인 파일C. C. Pyle은 막대한 이익을 예견하며 '투르 드프랑스'와 동일한 취지로 미국 대륙을 도보로 횡단하는 경주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대회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참가하는 스포츠 행사가 될 터였다. 우승 상금이 무려 2만 5,000달러에다 총 상금이 4만 8,000달러에 달하는 이 엄청난 경주에 필적할 만큼 성대한 대회를 주최하고자 했던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 어떤 의사는 이 경주가 참가자들의 생명을 5년에서 10년까지 단축시킬 것이며, 비록 전 세계에서 엄선된 우수한 주자들이 경주에 참가한다 할지라도 완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1928년 봄, 사업가인 파일C. C. Pyle은 막대한 이익을 예견하며 '투르 드프랑..

옷도 부끄러움도 없이 17세기 중반 영국에서 벌거벗은 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문은 그들을 "순전히 자연의 힘으로In Puris Naturalibus" 라는 표현을 써가며 다뤘다. 필립 킨더Philip Kinder는 더비셔에서 '벌거벗은 소년'과 '홀랑 벗은 2명의 상대 선수들' 이 한겨울에 벌인 2~3마일의 경주 장면을 묘사했다. 1681년 3~4명의 숙녀들이 은밀한 부위만을 가리고 거의 벌거벗은 채 달렸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 여자들이 옷을 어느 정도나 걸치고 있었던 것인지 확실히 알 길은 없다. 왜냐하면 시대마다 관찰자들이나 작가들이 내리는 나체 및 최소한도의 의상에 대한 해석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피터 래드포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영국 북부와 런던 지역에서 열아홉..

사실 혹은 날조? 최초로 1마일을 4분 안에 주파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1954년 5월 6일 옥스퍼드에서 영국인 로저 배니스 Roger Bannister가 그 신화적인 장벽을 3분 59초 4의 기록으로 깼다는 것은 달리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식이 되었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피터 래드포드는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그는 영국에서 1800년 이전에 벌어진 달리기 시합을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연구해왔고, 이 장벽이 18세기에 일찌감치 깨졌다는 증거를 자신이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1770년 5월 9일 런던의 길거리 행상인 제임스 패롯James Parrott은 구경꾼과 참관인들의 재촉을 받으며 고스웰 로드에 있는 차터하우스에서 출발해, 길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돌고, 계속해서 구(舊) old..

여성 주자들 셰익스피어는 또한 여성들을 위한 소위 '스목 경주smock race' 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 경주는 17세기 이후 200여 년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흔히 접할 수 있었던 시합으로, 경주의 거리는 대개 짧았다. 스목 경주라는 이름은 우승자에게 상품으로 'smock' (옷 위에 걸쳐 입는 덧옷-옮긴이)을 주는 경우가 흔했던 데서 유래했다. 스목 경주 연구의 권위자인 피터 래드포드Peter Radford에 따르면 스목 외에 페티코트, 스커트, 모자, 스커트용 옷감, 앞치마, 양의 다리 고기, 설탕, 차, 현금 등도 우승자에게 주는 상품 목록에 올라 있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 래드포드 역시 1960년대에 세계적인 단거리 선수였다. 보통 2~6명 사이의 여성들이 한 조를 이루어 성..

영국의 전령 유난히 따스했던 어느 날, 지원자들은 공작이 발코니에 한가롭게 누워있는 동안 공작이 시킨 대로 제복을 입고 앞뒤로 왔다갔다 뛰고 있었다. 그는 특히 그 가운데 한 젊은이를 마음에 들어했고, 그런 멋진 친구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그 젊은이를 오랫동안 계속 뛰게 했다. 마침내 공작이 소리쳤다. "그만하면 충분하네." 그 젊은이는 자기가 빌려 입은 말쑥한 제복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요”라고 대꾸하곤 누가 붙잡을 새도 없이 잽싸게 도망쳐버렸다. 영국에서는 전령들을 '달리는 종복running footmen' 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17세기 이후로 귀족들에게 고용되어 전갈을 전하기도 하고, 돈이 걸린 달리기 시합에 나가기도 했다. 전령을 부린다는 것은 경주마를 소유하는 ..

전령과 곡예주자들 15세기 이래로 중부 유럽에서는 '달리는 전령' 들이 활약했다. 그들은 전업 전령으로 일하거나, 귀족 혹은 영주들을 위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해 주던 사람들이다. 농노와 그 주인의 관계에 관해서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속담이 전해진다. "일주일에 엿새 동안 주인을 섬기고, 일곱 번째 날에는 전갈을 전하러 다녀야 할 것이다. 1573년 폴란드 브레슬라우에서는 선임 전령 한 명의 관할하에 40명의 수하 전령들이 속해 있었다. 그들은 보수가 좋고 고정적으로 교대근무를 할 수 있는데다, 군복무를 면제받는 등의 특권을 누렸다. 중앙유럽은 영토가 작은 나라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는 전령들이 감당해야 할 거리가 대체로 짧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우선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